Chapter 39
툰드라는 3공자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3공자는 본격적인 임무를 수행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겨울 성 밖에서 보낸다.
공작가 내에서 보기 어렵다.
‘불길한 기운이 느껴져.’
좋은 동기로 이곳을 찾은 것 같지는 않았다.
흡사 먹잇감을 노리는 하이에나 같았다.
저벅저벅.
둘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아, 네가 그, 비올라의 장난감?
아니, 잡종 개라던가?”
“…….”
“개들은 보통 주인을 보면 허리를 깊게 숙이지 않나?”
툰드라는 3공자 쿤도의 기세에 밀리지 않았다.
비올라 앞에서와는 눈빛부터 달랐다.
“제 주인은 비올라 공녀님입니다.
공자님.”
최소한의 예를 취한 툰드라가 고개를 들어 3공자를 쳐다보았다.
3공자는 이미 제국 정규 기사를 뛰어넘는 실력을 가졌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니 내게는 허리를 숙이지 못하시겠다?”
풉.
비웃음을 터뜨렸다.
“주인이나 개나, 재미있는 녀석들이야.”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내가 너한테 그걸 보고해야 할 의무가 있나?”
“없습니다만, 의외여서요. 3공자께서 이곳을 찾으신 것이 처음이지 않습니까? 게다가 피 냄새도 많이 나는데요.”
“그래서?”
“피 냄새를 잔뜩 묻히고 사람을 만나는 것이 귀족의 예의는 아니라고 알고 있는데요. 제 말이 틀렸습니까?”
확실히 쿤도의 몸에서 짙은 피 냄새가 났다.
잘은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 혹은 마물을 죽이고 돌아온 것 같았다.
자세히 보니 소매 끝에 붉은 피가 묻어 있었다.
쿤도가 가볍게 웃고서 말했다.
“주제넘게 끼어들지 마, 잡종 개주제에.”
“…….”
“주제를 알라고.”
“어디서 개 주제에 사람의 예의를 운운해?”
쿤도는 툰드라의 어깨를 살짝살짝 터치했다.
마치 먼지를 털어주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개는 그저 주인을 보면 꼬리나 흔들면서 멍멍 짖으면 되는 거야.”
툰드라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여기서 난동을 피울 수는 없었다.
‘방 너머에 주인님이 계셔.
주인님이 있는 곳에서 발악할 수는 없었다.
사냥개는 명령이 있을 때만 사냥감을 문다.
“야. 툰드라.”
“네. 3공자님.”
쿤도가 히죽 웃었다.
“짖어봐.”
툰드라는 잠자코 쿤도를 쳐다보았다.
딱히 화가 나지는 않았다. 툰드라의 꿈은 반려견이었고, 스스로 개라고 불리는 것이 불편하지는 않았으니까.
“해봐, 멍멍.”
툰드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게 쿤도의 심기를 거슬렀다.
눈빛이 살아 있는 것조차도 거슬렸다.
“멍멍. 짖어보라고.”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당신은 벨라투의 3공자이지만, 제 주인은 아닙니다.”
“그건 그래. 잘 배웠네. 좋은 자세야.”
쿤도는 다시 한번 히죽 웃었다.
퉤!
툰드라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툰드라는 침을 피하지 않았다.
그냥 목석처럼 제자리에 서 있기만 했다.
“아이코, 미안. 나도 모르게 기침을 해버렸네. 자, 이걸로 닦아.”
쿤도가 손수건을 내밀었다.
푸르스름한 독이 묻은 손수건이었다.
그런데 그때.
비올라의 방문이 열렸다.
“그쯤 하시죠. 오라버니.”
철혈 공녀 비올라가 직접 문을 열고 나왔다.
*
방 안에서 휴식을 취하려던 비올라는 찔끔 놀랐다.
3공자 쿤도의 목소리였다.
마치 이쪽 들으라는 듯 크게 시비를 걸고 있었다.
‘올 게 왔다.
3공자 쿤도.
쿤도의 여러 가지 설정값을 떠올렸다.
나이는 열아홉 살.
쿤도는 1공녀에게 큰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후계자 후보였으며, 툰드라와 비슷한 검술을 익히고 있었다.
소설 속 설정으로는 ‘벨라투 제1검식’을 주로 익힌 검술가였다.
벨라투의 적통답게 또래에서는 적수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한 힘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음습하고 위험하다고 묘사되는 인물이었다.
‘다른 건 그렇다 치고…….’
하얀 벨라투를 거의 증오하다시피 경멸하는 사람이었다.
벨라투의 힘은 오로지 강한 무력에서 나온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쿤도가 고개를 돌려 비올라 쪽을 쳐다보았다.
“그쯤 하시죠? 명령하는 거니?”
“명령 아니고 부탁이요.”
“부탁?”
예의를 차린 말에 쿤도의 눈이 반달을 그렸다.
비올라의 대답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네.”
“부탁이면 좀 더 정중히 해볼까?
내가 뭘 어떻게 해주면 좋겠어요?”
“집사나 시녀들 보기에 부끄러운짓 그만하고 제 방으로 조심스레 꺼져주시면 좋겠네요.”
순간, 쿤도의 몸이 움찔했다.
“음, 집사는 여기 없고.”
쿤도가 목을 돌렸다.
기형적으로 백팔십도가 돌아갔다.
등 뒤를 쳐다봤다.
복도 끝.
시녀 한 명이 서 있었다.
“시녀는 저기 있네. 시녀 보기에 부끄러우면.”
히죽 웃었다.
“시녀를 없애면 되겠다. 그치? 그럼 볼 사람도 없잖아.”
쿤도의 몸에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
비올라의 시선이 툰드라에게 닿았다.
툰드라의 볼을 타고 침이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것을 본 순간, 비올라는 이성을 잃을 뻔했다.
‘이 개 같은……….’
강한준의 얼굴이다.
저 얼굴에 침을 뱉었다.
3공자라는 쓰레기가.
“이리 와.”
비올라가 툰드라에게 손짓했다.
오매불망 모든 감각이 비올라에게 향해 있는 툰드라는 비올라에게 달려갔다.
비올라는 툰드라와 눈을 마주쳤다.
툰드라는 움찔했다.
침을 맞았다는 것.
모욕을 당했다는 것.
그런 것쯤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아…….’
그냥 눈을 마주치고 있을 뿐인데 좋았다.
만약 꼬리가 있었다면 살랑살랑 흔들렸을 것 같았다.
‘이게 주인님의 눈동자.’
연보라색 눈동자 안에, 툰드라 자신의 얼굴이 비쳤다.
한편, 비올라는 어지러움을 느꼈다.
‘어지러워.’
그사이, 쿤도가 성큼성큼 시녀를 향해 걸어갔다.
시녀는 겁을 많이 먹은 듯 보였다.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고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아, 아아…… 사, 살려……!”
저도 모르게 신음성이 새어 나왔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비올라의 입에서 하얀 입김이 새어 나왔다.
“열등감에 찌든 쓰레기 같은 게.”
쿤도의 몸이 움찔했다.
뒤를 돌아봤다.
비올라의 눈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래, 이거지.’
이거다.
쿤도가 비올라에게 바라왔던 모습은 이 모습이었다.
그사이 시녀는 도망쳐 버렸지만 상관없었다.
그는 이 모습을 보고 싶었다.
하얀 벨라투가 아니라.
검은 벨라투의 모습.
‘아름다워.’
저것이 살성인가.
역사서에만 기록되어 있는 아주 특별한 별.
살성을 가지고 태어난 인간인가.
쿤도가 몸을 돌렸다.
비올라 쪽을 쳐다봤다.
비올라의 몸이 사라져 있었다.
쿤도가 황급히 검을 휘둘렀다.
“이크, 빠르네.”
비올라의 단검이 쿤도의 대검과 맞닿았다.
그 순간.
비올라의 몸이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쿤도는 그 움직임을 읽어냈다.
‘우아해.
우아하고 빨랐다.
‘열 살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열 살이다.
그런데 움직임이 빨랐다.
‘그 대단하신 우리 메데이아 누님도, 열 살에 이 정도는 아니었을 텐데.’
그때,
쿤도가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검을 크게 휘둘렀다.
“벨라투 제1검식 1장. 오각성.”
쿤도의 대검에서 잿빛 기운이 새어 나오는가 싶더니, 이내 오각성의 검진이 생성되었다가 사라졌다.
비올라의 몸이 튕겨져 나갔다.
비올라는 공중에서 세 바퀴를 돌아 제자리에 착지했다.
비올라의 입에서 선혈이 흘러내렸다.
“열 살에, 벨라투의 검식을 배우지 못한 아이가, 이 정도 성취라니. 흐흐흐. 아참. 난 방어한 거다. 공격은 네가 했고, 반탄력 때문에 네가 다친 거야. 알지? 나는 일부러 폭력을 행사한 게 아니다?”
“뭐 어차피. 목격자가 없으니 상관없으려나.”
커다란 물리적 충격이 있었다.
그 충격 때문에 비올라는 정신을 차렸다.
‘진짜 비올라가 나와도 안 돼?’
역시 벨라투가의 순혈들은 괴물이 맞았다.
열 살의 비올라는 열아홉 살의 3공자를 이기지 못했다.
3공자는 일부러 자신이 무슨 기술을 사용하는지까지 알려주었다.
몸을 움직이면서 검술식을 알려줄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는 소리였다.
어쨌든 쿤도는 기분이 좋아진 것 같았다.
“동생과 만나는 기념으로 선물을 준비했어.”
아공간을 열더니 무엇인가를 꺼내들었다.
뚝뚝.
피가 떨어져 내렸다.
피를 잔뜩 흘리고 있는 고양이였다.
간신히 숨만 붙어 있는 상태였다.
쿤도가 고양이를 무성의하게 툭!
던졌다.
고양이가 비올라의 발에 닿았다.
고양이는 괴로운지 몸을 꿈틀거렸다.
간신히 숨만 쉬면서 애처로운 눈길로 비올라를 올려다봤다.
비올라는 가슴이 아팠다.
‘치료하기엔 늦었어.’
손에 쥐고 있던 단도를 들어 올렸다.
…편히 쉬렴.’
빙의 3년 차.
이 정도는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다.
숨 쉬는 것조차 힘겨워하는 고양이를, 더는 아프지 않은 곳에 보내주었다.
시선을 툰드라에게 옮겼다.
툰드라의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분노를 다스리고 있는 것 같았다.
“툰드라. 괜찮아.”
툰드라를 안정시키는 방법이 하나 있었다.
“기다려.”
툰드라는 강아지와 같았다.
마치 먹잇감을 앞에 두고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툰드라의 몸이 굳었다.
‘분해.’
자신이 옆에 있는데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너무 분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비올라는 툰드라의 그 마음을 알았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비올라가 입을 열었다.
“정말 안타깝네요. 오라버니.”
“그러게. 왜 뛰어난 재능의 막내가 하얀 벨라투를 선택했을까? 사실은 그 벨라투가 겁쟁이였을까?”
비올라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의미의 안타까움이 아니에요.”
비올라가 피가 흐른 입가를 슥-닦고서, 천천히 걸어갔다.
쿤도 바로 앞에 서서 작게 속삭였다.
“우리의 첫 만남이 안타깝다고. 등 X아.”
그와 동시에 저만치 끝에서, 누군가가 나타났다.
폭풍 같은 기세를 내뿜고 있었다.
“인사 방법이 아주 많이 잘못됐잖아.”
비올라가 씨익 웃었다.
“안 그래요, 오빠?”
3년간 꽁으로 살아남지 않았다.
이제 상황 역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