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94
입양딸 역할을 지나치게 잘해버렸다 194화
엘바토의 표정은 평안했다.
평안함을 넘어서 행복해 보이기까지 했다.
“나는 이제 다 이루었으니.”
비올라에게 닿지 않는 목소리를 건넸다. “여한이 없구나.”
엘바토의 몸에서 기이한 힘이 일렁거렸다. 그 하얀빛은 주변을 환히 밝힐 만큼 밝았다. 아셀다는 알 수 있었다.
‘신관들은 …… ‘
자신의 생명을 소모하여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아셀다가 직접 본 적은 없었다. 그 어떤 신관도 자신의 생명을 바쳐서 남을 살리지 않았다. 적어도 아셀다가 본 신관들은 그랬다.
‘제 생명을 바치고 있는 거야.’
아셀다가 정확하게 보았다. 엘바토는 가진바 모든 힘을 끌어내기로 했다.
나의 생명을 바쳐.
내가 가진 모든 힘을 바쳐.
저곳으로 향하는 온전한 길을 뚫어 내리라.
그는 한때 ‘기적의 신관이었다. 한때 기적의 신관이었고, 진짜 기적의 신관이 되기로 했다.
기적을 일으키기로 했다.
그의 생명과 맞바꾸어. “너를 만나 나의 삶이 가치 있어졌다.”
가치 있는 삶을 살게 해주어 고맙구나. 나는 진정 다 이루었구나. 엘바토의 안색이 더욱 나빠졌다.
새파랗게 질렸다.
엘바토는 알고 있었다.
이제 곧 나의 심장은 멈출 것이다.
신의 기적을 일으킨 대가로 나는 사라질 것이다.
그러니, “이제 기쁘게 노래를 부르라.”
평범한 사람들 속에서 엘프들의 여왕 하모나가 걸어 나왔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다. ‘먼저 가서, 기다려라, 늙은이.”
그녀가 말했다. “영감탱이. 넌 좋은 친구였어.”
하모나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벨라투의 그림자> 속 ‘여왕의 장송곡’이라 기록되었던 그 노래.
본래는 하모나가 비올라에 의해 최후를 맞이할 때 읊었던 노래. 그 노래가 하모나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겨울에 찾아올 새에 깊은 흑암이 드리워 카레나의 모든 잎에 땅에 떨어져 썩고 월계관도 썩어 없어지나.”
소설 속 ‘여왕의 장송곡과는 완전히 달랐다. 친구를 떠나 보내며..
엘바토가 선택한 명예로운 마지막을 기념하며.
그를 위한 장송곡을 불렀다.
“언젠가 봄이 도래하여 새로운 꽃을 피우리라.”
그 노래를 ‘가짜 신관들과 엘프들이 따라 불렀다. 그것이 하나의 거대한 권능이 되어 ‘바하카룬’의 세계를 잡아먹기 시작했다. 그 노랫소리가 비올라에게 닿았다. “그럼 이제 종장을 지을 차례인 것 같구나, 아이들아. 잠시나마 즐거웠다.”
바하카룬의 목소리가 들려왔을 그 시점. ‘여왕의 장송곡’이 들려왔다. 그것은 ‘성가(聖歌)’였다.
모든 것을 잡아먹는 이 어둠을 몰아내는 힘.
비올라는 직감했다.
‘기적이 일어나고 있어.’
기적은 이미 한차례 일어났었다. 엘프들의 숲에서, 죽을 운명이었던 비첸이 살아났었다.
장송곡을 끝낸 하모나가 말했다.
“아이의 몸에 담긴 기적의 마나와 도움을 청하는 자의 간구가 만나, 진정한 신의 뜻이 그 자리에 강림하리.”
그리고 저만치 멀리, 에바토 영감이 쓰러져 있었다.
꽤 멀기는 했지만 표정은 선명히 보였다.
‘영감님?’
엘바토는 웃고 있었다. 마치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는 듯.
그리고 그때, 거대한 폭풍이 불었다. ‘눈이 부는 곳에서 불어닥치는 눈폭풍보다 더욱 강맹한 마나의 폭풍이었다. 헤론이 만들어낸 검풍이었다.
그 폭풍은 저 ‘기적의 힘’을 내포하고 있었다. 헤론이 일으킨 강맹한 검풍과 가짜신관들이 만들어낸 기적의 마나가 합쳐져 바하카룬의 세계를 난도질했다.
“아프구나.”
바하카룬의 목소리는 즐거운 것 같았다. “정말, 너무, 너무, 너무, 아프구나.”
그의 세계에 빛이 찾아들었다. 빛이 곧 그의 피이고 상처였다.
반대로, ‘기적의 힘은 쓰러진 툰드라와 셀빈을 회복시켰다.
피가 멎었고 새 살이 돋았다.
“나의 아이는, 어디 있느냐?”
헤론은 비올라를 찾았다. 그 작은 몸을 안아 들었다. 비올라는 헤론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아빠.”
헤론의 품은 생각보다 훨씬 따뜻했다. “또또, 또 운다, 울보 아빠..”
“무사해서 다행이구나.”
한 명, 한 명. 철혈 성녀를 위해 모인 영웅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들은 바하카룬의 세계를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헤론 외에, 또 비올라를 자기 딸이라 주장하는 남자가 있었다.
“감히, 내 딸을 건드려?”
힉슨은 용서할 수 없었다. 이 바하카룬의 세계를 철저히 부숴버리기로 했다. “네가 내 친구를 괴롭힌 놈이냐?”
친구의 적은 내 적이다. 카이저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내, 헤론이 일으킨 검의 폭풍보다 훨씬 더 차가운 속성의 바람이 불었다.
주변 세계가 얼어붙기 시작했다.
라스본 빙검식 최종오의.
빙검의 장송곡.
본래는 불길한 마나의 울음소리가 들려와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기적의 마나와 함께하는 ‘빙검의 장송곡은 전혀 불길하지 않았다. 그것은 세계에 빛을 불러왔다.
바하카룬은 즐거워했다.
“너무 아프구나.”
제논의 눈이 새빨갛게 변해 있었다. 완숙한 경지의 살성이 다시 한번 모습을 드러냈다.
“죽는 것이 원이라면, 죽여 드리지요.”
그러나 그 살성은 비올라가 폭주할 때의 살성과는 달랐다. 제논은 지금 당장에라도 달려가 헤론의 품에서 비올라를 빼앗고 싶었다.
내가 안아주고 싶었다.
내가 당신의 집사니까.
나도 당신을 안아줄 수 있으니까.
그만큼 비올라를 아꼈고, 그만큼 비올라가 살기를 바랐다.
비올라가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살성의 살기를 억눌렀다.
“바하카룬, 당신에게는 생명이 곧 죽음입니까?”
모든 것이 극의에 다다르면 하나로 통한다고 하였다. 그것을 무인들은 만류귀종이라 부른다. 제논의 살성에서 살기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살육 본능은 없어지고, 이내 비올라를 위한 마음이 가득 들어찼다.
검이 극의에 다다르면 생검이 되.
살성도 마찬가지였다.
“반드시 당신을, 생명으로 죽이겠습니다.” 제논 역시 생검의 경지에 들어섰다. 비올라를 살리고 싶다는 마음이.
비올라를 위하는 마음이 제논을 그렇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건 제논뿐만이 아니었다. “비올라아아아아아아아!”
비첸 역시 마찬가지였다. 비첸은 미쳐 버린 망아지처럼 이리 저리 날뛰며 단도를 휘둘렀다.
그의 검끝에는 ‘기적의 마나가 담겨 있었다. 그의 검 역시 무엇인가를 살리는 힘이 내포되어 있었고, 그것은 바하카룬의 세계를 무차별적으로 찔러댔다. “내가!”
비첸이 크게 소리쳤다. “비올라의 오빠다!”
그러니까 비올라를 괴롭게 만든 이 바하카룬인지 나발인지 하는 것쯤은, “내가 혼내준다!”
바하카룬의 세계에 수많은 균열이 일었고, 빛이 스며들었다. 그러자 퐁퐁이도 다시금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 “비올라!”
비올라는 거의 정신을 잃은 채 헤론에게 안겨 있었고 퐁퐁이는 바하카룬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의 몸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몸에, 또 ‘기적의 마나’가 깃들었다. 퐁퐁이는 분노한 가운데 느낄 수 있었다.
‘이 힘은…!’
익히 알고 있는 힘이었다. 평범한(?) 정령후였던 켈-베론이 정령왕이 될 수 있었던 힘.
남을 위하여 나를 희생할 수 있는 고귀하고 무거운 마음가짐.
‘정령왕께서 내게 가르쳐 주신 힘이야.”
그래서 저 힘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정령왕 퐁퐁이의 몸이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나는 비올라의 계약자다!”
비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기적의 마나를 머금은 비가.
“아무도 내 친구를 해치지 못해.”
비올라와 약속했다. 함께 예쁜 꽃밭을 가꾸기로, 그 약속을 지켜야 했다.
바하카룬의 세계 따위.
부숴 버리기로 했다.
이내, 폭풍요새를 지키고 있던 폭풍검 재칼도 이곳에 도착했다.
‘아들아.’
살아 있었구나. 아들 제르미를 만났다.
아주 오래전 옛날이 떠올랐다. 비올라가 메데이아와 함께 폭풍 요새의 특사로 파견되었던 그때.
‘그때 만약 비올라가 없었다면……… 나와 메데이아. 둘 중 하나는 없었을 것이다.
다행히 지금은 둘 다 이 자리에 있었다.
그것은 비올라의 은혜였다.
그러니 그 은혜를 갚기로 했다. 그 무엇보다 패도적인 검 ‘폭풍검’을 운용하여 세계를 부수기 시작했다. 아셀다는 비올라보다 셀빈이 우선이었다.
그녀는 셀빈은 안아 들어 셀빈의 안위를 확인했다.
정신을 잃었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어 보였다.
‘다행이구나. 다행이야.’
아무래도 집으로 돌아가면 크게 혼을 내야겠다. 가출이라니.
그것도 심지어 ‘옛 무인들의 성지’라니.
‘다행이구나.’
아셀다의 눈에서 뚝뚝 눈물이 흘러 내렸다. 이내 아셀다는 셀빈은 살몬에게 넘겼다.
“셀빈을 꽉 안아줘. 많이 무리한 모양이야.”
“당신은?”
“나는 또 다른 사람을 수습해야 할것 같아.”
셀빈을 살몬에게 넘겨준 아셀다는 엘바토를 안았다. 그의 몸은 이미 차갑게 식어 있었다. “이 기적의 단초를 마련한 자에게 경의를.”
아셀다는 이곳의 기적에 동참하는 대신, 엘바토에게 경의를 표하며 엘바토를 수습했다. 그것이 엘바토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엘바토를 안은 채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상황을 지켜보았다.
‘응?’
그녀의 눈에 한 소년이 눈에 들어왔다. ‘세상에나.’
헤론만큼의 기세를 내뿜고 있는 소년. 저 소년의 눈이 황금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저 나이에 저런 게 어떻게 가능하지?’
일전에도 한 번 보기는 했었지만, 그때보다 더 놀랐다. 지금 소년이 내뿜고 있는 기세는, 결코 저 나이에 불가능한 기세였다.
그가 일어나 비올라를 향해 걸어갔다. 비올라에게 태양검을 건네받았다.
“태양검을 주세요.”
수많은 자가 나타나 기적을 일으켰다. 그러나 ‘바하카룬’은 단순한 기적 만으로 없어지지 않는 존재다. 툰드라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기적 이상의 기적.
그 이상의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툰드라는 그것을 일으키기로 했다.
비올라를 소중히 안은 채, 헤론이 물었다.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이냐?”
“바하카룬이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의 권능을 잡아먹고 버틸 수 있는 강인한 것이 나타나, 진실석을 머금은 채 그의 권능을 일시적으로 집어삼켰을 때.” 툰드라의 시선이, 셀빈을 안고 있는 살몬 브란디아 공작을 향했다. 셀빈의 아버지 살몬 브란디아는 용암 거인의 후손이었고, 모든 이능을 잡아먹는 권능을 가진 자였다.
그라면 진실석을 머금은 채, 바하카룬의 권능을 집어삼킬 수 있을 것이다.
셀빈이 정신을 잃은 지금.
살몬만이 해줄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신을 거역할 수 있는 자가 태양검으로 나를 찔러야 한다.”
툰드라가 살몬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진실석을 건네주었다.
“마지막 기적에 동참해 주시겠습니까?”